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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 당신에게 월요일 아침이란? | 기본 카테고리 | by 오민수
2018-01-22 오후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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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차를 몰고 출근하고, 서둘러 업무 회의에 들어가고,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다이어트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 재산, 휴식, 바쁜 일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삶의 목적의식이, 서사적 궤적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그 유명한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했다. 매일 아침은 흥겨운 초대장이라고, 그리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월든 호수에 목욕을 하고 "매일 그대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라는 주문으로 아침을 시작하며 늘 깨어있는 자의 삶을 실천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그와 같을 수 없다. 그처럼 미세먼지 하나 없는 밤하늘과 그곳에 가득 찬 별들의 은총을 받으며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처럼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푸르름으로 지평선이 펼쳐진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지도 못했다. 그처럼 현재라는 시간을 희생하지 않을 만큼 삶에 넓은 여백을 두는 자연인의 삶은 엄두조차 내지도 못했다.

 

우리는 그와 다르다.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은 모두 파괴해 버리고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겠다는 그의 의지가 우리에겐 생소하게 느껴질 뿐이다.

 

월요일 아침 8시.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동료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집주인이 집세를 올려 달래. 그것도 엄청 많이"
"그래서 표정이 그런 거야?"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원래 월요일 아침이란 게 이렇지 않나?"

 

그러고 보니 엘리베이터 앞에 모인 회사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그 동료와 똑같았다.
다들 집세가 오른 것은 아닐 테고, 마치 월요일 아침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에 도달한 것 같은 표정들이다.

 

아주 오래전, 이렇게 어김없이 돌아오는 월요일 아침을 무척이나 힘겨워했던 여직원을 나는 기억한다.
그녀는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매일매일이 데칼코마니 같은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힐링이 되는 것은 틈나는 대로 즐겼던 인터넷 쇼핑이었다. 한 번은 주말에 집에서 무엇을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쇼핑을 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여직원은 늘 쇼핑을 했다.
반복되는 회사생활이 견디기 힘든 일상의 데칼코마니가 아니라 그녀의 습관적인 쇼핑과 그것을 목격하는 나 자신이 오히려 견디기 힘든 일상의 데칼코마니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엔 나 역시 지긋지긋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런 데칼코마니 같은 회사생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자극을 준 누군가의 연설을 보게 되었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차를 몰고 출근하고, 서둘러 업무 회의에 들어가고,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다이어트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일, 재산, 휴식, 바쁜 일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에 목적의식이, 서사적 궤적이 필요해졌습니다."

 

2007년 6월 23일, 당시 대선후보였던 버락 오바마가 어느 종교행사에서 했던 연설이었다.
나는 그의 연설문 중 "서사적 궤적(narrative arc)"이라는 표현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최면을 거는 주술적인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의 삶에 서사적 궤적을 만들어 보라고,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삶의 궤적을 만들어 보라고, 그리하여 월요일 아침에 흥겨운 초대장을 받은 사람처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보라고.

 

어제와 똑같으면 서사적일 수 없다. 어제와 다르다면 서사적 이야기가 된다. 나는 서사적인 삶을 원했다. 오늘 내 삶이 어제와 달라야 하는 이유였다.

 

나는 데칼코마니 같은 일상을 파괴해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곤 어김없이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 쇼핑을 즐기고 있는 그 여직원에게 독설을 날렸다.

 

"계속 그럴 거면 회사 때려치우고 나가서 쇼핑몰이나 차리지 그래!"

 

그녀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진짜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얼마 후, 그 여직원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동료들과 인사하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유독 나와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퇴사 결심에 내가 영향을 미쳤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원한 것은 내 삶의 서사적 궤적이었는데 막상 다른 사람에게 원치 않은 삶의 궤적을 만들어 준 것 같아 미안했다.

 

나는 그녀와 친분이 있는 다른 동료 여직원들을 수소문하며 그녀의 이후 행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G마켓에 온라인 점포를 입점했다. 다시 말해 진짜로 쇼핑몰을 차리고 있었다.

 

나도 어제와 달라지기 위해 궤적을 이어나가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 여직원의 퇴사 후 나 역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고, 결국 삶의 궤적을 찾아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직을 한다고 해서 월요일 아침이 늘 새롭거나 서사적 궤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환경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변화였다. 이 단순한 진리를 나는 이직을 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결국 다른 회사에서도 똑같은 월요일 아침을 수십 번 반복하고 서사적 궤적이란 게 희미해져 다람쥐 쳇바퀴로 변해갈 때쯤, 이전 회사 동료들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G마켓에 입점했던 그 여직원 소식이었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사업이 번창하여 독자 브랜드를 가진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했고, 그마저도 잘 돼서 이제는 사무실도 차리고 정규직 직원을 채용하기에 이르렀다는 소식이었다.

 

얼마 후, 이전 회사 동료들끼리 성공한 그녀를 영접하는 모임이 결성되었고, 나는 죄인의 자격(?)으로 그녀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참석을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론적으로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지난날의 앙금은 나에게만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마치 추억을 회상하듯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증오심이란 게 없었다.

 

나는 무엇보다 그녀의 일상이 어떠한지 궁금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데칼코마니 같은 일상에 종지부를 찍고 흥겨운 초대장을 받은 사람처럼 매일 아침이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하여 월요일 아침마다 벌떡 일어나 서사적 궤적을 그리며 월화수목금을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녀의 답변은 예상외였다.

 

"아뇨. 그때 이후로 월화수목금금금처럼 살고 있어요. 오히려 주말이 날아가 버린 셈이죠."

 

성공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살벌한 답변이었다.
그냥 좋아하는 일이니까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한다고 했다. 결국 그것도 반복적인 삶이라 지루할 때도 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와 다르게 늘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 쇼핑도 일처럼 하면 지루하긴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그리고 그런 삶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뭔가를 이루어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고 두근거리는 삶은 아니었다. 내 안의 영감이 솟아나고 그 영감을 따를 수 있는 삶이 두근거리는 삶이었다. 그 삶이 겉으로 보기에 반복적이고 지루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의미가 있는 축적의 시간이었다.

 

서사적 궤적이란 매일 삶이 달라져서 월요일 아침조차 두근거리는 삶은 아니었다. 의미 있는 축적의 시간이 쌓여 서서히 성장해 가는 삶이 크게 보자면 서사적 궤적을 그리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그녀는 놀라운 얘기를 해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쇼핑몰이나 차리라고 쓴소리를 했던 그 순간에 대한 얘기였다. 마치 '천상의 소명'이 귓가에 메아리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분명 기분 나쁜 소리였지만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회사에서 몰래 쇼핑할게 아니라, 진짜로 쇼핑몰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그 순간 번쩍 들었다고 했다.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에 대한 증오심은 없었다고 하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오묘한 인연이었다.

 


한결같은 월요일 아침

 

또 월요일 아침 8시.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동료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집세 걱정이야?"

 

"응, 집주인이 집세를 올려달란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메아리쳐. 그건 그렇고, 원래 월요일 아침이 이런 거잖아?"

 

역시나 엘리베이터 앞에 모인 회사 사람들의 표정이 암묵적 합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표정을 보니 아주 오래전 월요일 아침을 무척이나 힘겨워했던 그 여직원이 생각났다. 나의 쓴소리를 '천상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던 그 여직원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천상의 소명이 귓가에 메아리칠 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고귀하고 영험한 순간일 거라 착각하지만, 알고 보면 보잘것없고 간절한 순간에 그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고 한다.

 

내 직장 동료처럼 집주인이 집세를 올려달라는 순간에 그 천상의 소명을 들은 사람도 있다. 그는 가난한 젊은이였고 더 이상 집세를 충당하기가 어려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집주인이 집세를 올려달라고 했고 그 순간 천상의 소명을 듣게 되었다. 그는 천상의 소명에 따라 자기 집의 빈 공간과 침대를 타인에게 빌려줘서 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렇게 집세를 감당하고 나서 계속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는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2008년 시작한 이 사업은 훗날 기업가치 30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숙박 공유 사이트로 성장해 버렸다.
그가 바로 에어비앤비의 CEO, 브라이언 체스키였다.

 

나의 월요일 아침은 한결같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처럼 부분적으로 반복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때론 '깊은 무료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즐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 주변 동료들의 표정을 보면 나와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와중에 천상의 소명을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늘 똑같아 보이지만 항상 새로운 영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제와 오늘을 비교한다고 해서 쉽게 알 수 없다. 다만 서서히 서사적 궤적을 그리며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처음 삶의 궤적을 바꾸기 위해 이곳으로 이직했던 날을 기억한다. 당시 나의 입사 동기는 9명이었고 우리는 똑같이 OJT를 받았으며 똑같이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그 9명의 삶이 서로 똑같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다른 서사적 궤적을 그리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차를 몰고 출근하고, 서둘러 업무 회의에 들어가고,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다이어트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 재산, 휴식, 바쁜 일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삶에 의미가, 서사적 궤적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 월요일 아침은 조금씩 궤적을 바꾸며 나아간다.

 

 

 

 

영감을 준 자료
 

BOOK  월든 Walden /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SERICEO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브라이언 체스키 / 이지훈 / 2017.07.20.

SERICEO  나답게 살아간다는 의미 / 김영아 / 2017.07.25.

             - [소개된 책]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파울로 코엘료 / 20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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