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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 숫자에 가려진 진실 | 기본 카테고리 | by 오민수
2018-01-29 오전 10:06

https://e-learning.nhi.go.kr/blog/blog/blog/blogMain.do?iframe=viewPost_D.do&artNo=1370


“2013년 서울시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99명입니다.”

이 문장은 사실 그대로의 문장이다.
사망자 수가 많다고 느껴지는가? 많지 않다고 느껴지는가?
그것은 아마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만약 발표하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면 의도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399명이라는 숫자는 얼마든지 다른 숫자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게,

“서울시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하루 1명 이상 발생합니다. 오늘 그 1명이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교통 사고의 심각성을 알려야 하는 입장이라면 충분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변북로를 운전하다가 볼 수 있는 <서울시 어제의 교통사고 사망자 ○명>현황판도 같은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반대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한 해 서울시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서울시민 중 0.003%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서울시 인구는 천만 명이 넘는다. 399명이라는 숫자를 천만 명 중의 비율로 표현하면 훨씬 초라한 숫자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현실은 발표자의 입장에 따라 숫자의 취사선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발표된 숫자를 보는 사람들은 발표자의 의도에 따라 반응하게 될 것이다.
숫자, 그리고 숫자로 표현되는 이 세상의 모든 통계는 얼마든지 이런 일이 가능하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그냥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예를 들어, 다음 통계를 보자.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1.3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고 한다.
숫자가 거짓이 아닌 이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숫자의 이면을 보게 되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한국, 일본, 미국만 비교해 보자.
각 나라에서 차량이 주행하는 연간 평균 거리는 서로 다르다.
일본은 약 1만km, 미국은 약 1.6만km이지만, 우리나라는 약 2.5만km로 상대적으로 매우 길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가 더 긴데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를 비교하게 되면 누가 불리해 질까?
정확하게 따지자면 주행 거리당 사고 건수를 비교해야 올바른 숫자가 나올 것이다.

가만히 보면 국가 간 통계를 비교하는 일은 여러 가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가 간 기준이란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취업률을 비교했을 때, 모든 국가의 취업자 기준이 동일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무보수로 가족사업에 종사하는 경우를 따져보자.
이런 경우 우리나라는 주당 18시간 이상 일을 해야 취업자로 간주한다.
그러나 일본은 1시간 이상 일하면 취업자고 미국은 15시간 이상 일하면 취업자가 된다.
만약 각국의 실업률을 비교한다면 이 또한 누가 불리해 질까?

그렇다면 가장 기본이 되는 인구 통계는 믿을 수 있을까?
중국의 인구는 13억 5,569만 2,576명이라고 한다.

숫자가 매우 디테일해서 정확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의 인구 통계에는 빠진 인구가 많다고 한다.
가득이나 인구가 많다는 점도 측정을 어렵게 하겠지만, 등록되지 않은 인구의 숫자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떤 전문가는 중국 통계가 놓친 인구만 해도 3~4억 명은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역시, 대륙은 대륙이다. 까먹은 인구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로 따지면 10배에 근접한다.

우리는 숫자와 통계를 너무나 잘 신뢰한다.
안타까운 일은 숫자가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곧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실적인 숫자가 진실을 완벽하게 왜곡할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을 누군가가 의도했다면 결과는 조작된 현실이 넘쳐나게 된다.
 

측정할 수 없다면 경영할 수 없다.
- 피터 드러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측정한다.
그리고 측정한 결론은 항상 숫자로 표현된다.
숫자는 매우 사실적이며 명확하기에 논박이 어렵고 완벽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그 어떤 기호나 문자보다 권위를 가질 수 있다.

대체로 권위가 높은 조직은 숫자를 만들어 내며, 동시에 그 숫자로 인해 권위를 갖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용평가 기관들이다.
일명 <빅3>라 불리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Moody’s), 피치(Fitch)가 발표하는 각 나라의

신용평가 등급, 즉 숫자는 무시무시한 권위를 갖는다.
이 숫자에 따라 한 국가의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니까 말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오늘날 전 세계는 두 가지 슈퍼 파워가 존재한다. 하나는 미국이며, 다른 하나는 무디스다.
미국은 핵폭탄을 떨어뜨려 특정 국가를 파멸시킬 수 있지만, 무디스 또한 신용등급을 떨어뜨려 특정 국가를 파멸시킬 수 있다.
언젠가 미국과 무디스 가운데 누가 더 힘이 센지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어떤 측정도 신용평가도 숫자를 위시하여 사실처럼 말할 수 있겠지만, 완벽한 진실은 반영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신용평가 기관들이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 포함된 정보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보고서에 포함된 신용평가나 기타 의견을 신뢰해

투자 의사를 결정해서는 곤란합니다.”

이 문구는 세계적인 신용평가 기관들이 발급한 모든 보고서의 맨 끝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문장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문장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측정할 수 없다.
- 데밍


진실을 알기 위해 측정했던 숫자가 오히려 진실을 기만하는 현상은 너무나도 많다.
숫자가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실성에 우리는 눈이 멀지만, 결국 숫자는 진실의 단편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코끼리를 더듬는 여러 명의 장님과도 같다.

어떤 장님은 코끼리의 코를 만지며 코끼리가 뱀처럼 가늘다고 말한다.
어떤 장님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며 코끼리가 나무처럼 묵직하다고 말한다.
어떤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지며 코끼리가 접시처럼 넓적하다고 말한다.
각각의 장님들이 만진 것은 명확한 코끼리지만 그렇다고 코끼리의 진실을 말한 장님은 없다.

미국에서는 한 통계 발표가 의사들을 삐뚤어지게 만들었다.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진 환자들의 수치와 목숨을 잃은 환자들의 수치를 비교한 것이었다.
결국 이 통계는 알고자 했던 진실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의사들을 동기유발했다.
즉, 의사들이 점점 어려운 수술을 맡기 싫어하게 되었다.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경우 환자를 돌려보내거나 아예 예약을 받지 않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목숨을 잃은 환자는 결국 누구의 책임인가?

영국에서는 학교를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바람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원래는 표준화된 시험 성적에 따라 학교 간 경쟁을 촉진하려고 했으나 문제는 학교들이 시험 결과에만 집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제도 때문에 학교들은 순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하위권 학생들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학생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측정하기가 어렵다.
그러한 이유로 정부와 기관들은 자꾸 무언가 다른 것을 밝히려고 든다.
결국엔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여 사실을 밝혔다고 믿겠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요한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계산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분명, 원래는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시험 성적을 강요했더니 학생들이 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하려 든다면
학교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 것일까?

직원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생산성과 관련된 모든 지표를 만들어서 적용했더니
직원들이 전부 생산성 지표의 노예가 되었다면 회사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 것일까?

빅데이터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훨씬 많은 것들을 오해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최근 빅데이터는 인간의 행복도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는 사랑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데이터의 보이지 않는 손 / 야노 가즈오 저

우리는 커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측정하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분석하여 수치화하고,
외출하는 횟수를 헤아리고, 그들이 가진 재산을 파악하고, 데이트 비용의 증감을 분석하고,
섹스를 갖는 횟수를 통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숫자의 합이 사랑은 아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하는 학생이나 다를 바 없다.
때로는 누군가를 마주 보며, 진심을 담아 쓴 도화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숫자는 우리에게 진실을 그대로 말해 주지 않는다.
단편적인 사실만을 보여줄 뿐이다. 마치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처럼.
그것을 이용해 어떤 의도를 가진 자가 당신에게 매우 아름다운 숫자를 보여줄 수도 있다.

 

숫자를 보는 안목은 숫자 자체에 있지 않다.

혜안을 가진 자는 숫자의 뒤를 본다.

진실은 항상 숫자 너머에 있으니까.

 


영감을 준 자료
BOOK 숫자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 Lorenzo Fioramonti / 2015.06
BOOK 새빨간 거짓말, 통계 / Darrell Huff / 2004.04
BOOK 데이터의 보이지 않는 손 / 야노 가즈오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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